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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환대 조회수 : 524
  작성자 : 김주용 목사 작성일 : 2021-09-24

                       난민의 환대를 보는 한 목사의 시선

2021.8.23. 우리나라는 한 무리의 아프간 난민을 수송기로 실어와 진천 땅에 안주케 했다. 그들은 환호했고, 우리 국민들도 일단 환영했다. 이렇듯 난민을 환대한다는 것은 일단 박수칠 일이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더 다양한 맥락의 난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한국은 함께 살아갈 이웃들을 맞이해야 할 선진국처럼 동시에 그들에게 당연히 따뜻한 손을 내밀어줘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환대(Hospitality)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접근해보고자 한다. 먼저는 1815.10. 프랑스 디뉴교구 미리엘 주교의 집에 한 노란색 죄수 통행증을 든’장발장‘이 불쑥 찾아온다. 미리엘 주교는 그에게, ’이 곳은 당신의 집입니다. 이 곳에 있는 모든 것은 당신 것입니다. 당신 이름은 저의 형제입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그의 환대는 무조건이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두 천사를 직접 나아가 맞이하며 ’무조건 환대‘를 했고, 그의 조카 롯은 ’조건부 환대‘를 하고 있다. 물론 그 결과는 하늘 땅 차이를 낳았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봐도, ’이방인은 관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당시 헬라인은 이방인을 환대할 의무가 당연히 있었다. 그렇다면 환대는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고, 무조건 환대가 먼저인 것처럼 보인다. 인간(anthropos-위를 바라보는 자)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누구나 무조건 환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면서도 가능한 것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엘 주교는 환대 후유증을 곧 만나서 난처할 뻔했다. 그러나 한걸음 앞으로 나가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선물로 주며 환대 사실을 증명했었다. 그 환대로 인하여 장발장은 19년 옥살이에 따른 증오를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 

이 시간 독자 중에는 이런 시선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몰라도 너무 세상을 모르는 한 목사의 생각이라고 치부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분에게 한가지 되묻고자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실 때에 환대하셨고, 그 환대하심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지? 그리고 당신을 환대한 일과 앞으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환대(歡待)는 서로 다른 문제인지?를. 

J.W.Jipp는 아예 ’구원은 환대‘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방인들을 환대했던 그 사랑의 실천이, 코로나 이후를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실천 사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빅토르 위고는 코로나 시대를 사는 특히 환대를 잊어버린 우리에게 다시 환대의 영성을 깨우쳐주었다. 이것이 난민을 환대했던 나라에 살던 한 목사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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